삐뚤어진 마당이 있는 나의 집을 찾아서 - 『땅따먹기』

『땅따먹기』는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장편동화다. 장은 다음과 같이 분류되어 있다. 첫 번째와 마지막 장은 각각 미영이와 기영이의 시선을 담았으며, 사이에 놓인 다섯 개의 장은 동물 캐릭터들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차례로 꼬꼬, 짹짹이, 누렁이, 모질이, 서생원의 이야기다.
작품은 동물 캐릭터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사람을 동물로 대신해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동물을 의인화한 방식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나 성별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이 적용되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린이와 어른의 구도는 있었다. 천진하고 호기심 많은 닭 꼬꼬, 그리고 서로 친구가 되는 참새 짹짹이와 고양이 모질이는 어린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동물들 사이에서 누렁이 ‘아저씨’로 불리는 미영이네 개 누렁이는 마당에서 자라는 여느 개들처럼 마당을 수호한다. 다른 동물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고 보살피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아저씨’ 호칭을 따라 어른 캐릭터를 대신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 속에는 두 부류의 어른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누렁이 아저씨가 있고 모질이의 고양이 부모를 누렁이 아저씨와 대조되는 어른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다.
모질이는 ‘고양이답지 않은 고양이’다. 사냥하기를 싫어하고 고양이들이 먹이 삼는 닭과 참새와 어울려 논다. 이러한 모질이에게 두 부류의 어른은 다른 태도를 보이는데, 모질이의 부모는 ‘진정한 고양이’는 사냥을 하고 사람의 손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닭과 참새와 개가 있는 미영이네 마당에 놀러가는 모질이를 끊임없이 회유한다. 또 모질이를 거두어주며 밥을 나누어주거나 보금자리를 나누어주는 누렁이에게 속셈이 있을 거라며 경계한다.
하지만 누렁이는 모질이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려 노력한다. 물론 작가는 이분적인 분류로 가기를 경계한다. “모질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아 있는 것을 먹어야 살 수 있단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야. 다른 이의 생명을 받아 사는 생명니까. 야옹.” 모질이 부모는 이 말을 끝으로 모질이의 선택을 결과적으로는 존중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고기를 못 먹어도 고양이는 고양이” 라는 시선의 필요성이다. ‘고양이는 이러할 것이다’라는 가정의 문장엔 ‘고양이는 이러해야한다’는 당위가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질이는 사람과 살고 싶어한다. 고양이답게 사는 삶과, 고양이답지 않지만 모질이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획일된 틀에 강제하려는 시선과 말들에 ‘모질다는 것은 아주 사납고 인정사정을 안 봐주는 거다. 나는 인정이 넘치고 사정을 잘 들어주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라는 통쾌한 다짐을 내비칠 수 있는 용기도 있다.
두 부류의 어른이 있다면 책 속의 어린이 인물들, 그러니까 꼬꼬와 모질이, 짹짹이는 유쾌하고 명쾌하게 세계의 법칙을 비폭력적으로 해체하고 파괴한다. 짹짹이의 부모는 짹짹이에게 꼬꼬와 모질이와는 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볍게 벽을 허물고 “우리 친구하자” 라는 말을 건넨다. 그렇게 네 동물은 한 마당에 모이게 됐는데, 이들에게 자신과 모습이 다른 친구는 이 정도의 경계감뿐이었다. ‘모질이가 꼬꼬에게 달려갔다. 꼬꼬는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모질이와 놀았다.’
동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개되는 이야기는 미영이네 가족의 이야기다. 미영이네는 재건축으로 마당 있는 지금의 집에서 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 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미영이의 부모는 고민에 빠진다. 남들처럼 네모반듯한 아파트로 이사갈 것인지 삐뚤어진 마당이지만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우리’의 집에 살지 말이다.
미영이와 기영이가 하는 땅따먹기 게임도 주제의식을 품고 있다. 각자의 땅에서 돌을 던져 영역을 넓히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 대치 상황에 놓인 미영이와 기영이는 비무장 지대를 만든다. 평화의 땅, 싸우지 않는 땅인 셈이다.
미영이네 마당은 땅따먹기 게임판의 비무장 지대다. 고양이와 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그러나 미영이네 삐뚤어진 마당이 우리 세계에서 차지하는 크기만큼 그런 영역은 현실 세계에서도 넓지 않다.
책 속 동물들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또 책임을 다한다. 짹짹이가 부모를 떠나 시골로 떠나기를 선택한 뒤 모질이를 통해 부모에게 이렇게 전했다. “우리 엄마한테 전해줘. 나는 엄마도 원망 안 하고, 나도 원망 안 하고, 꼬꼬도 원망 안 한다고. 우리 아빠한테도 전해줘. 아무리 위험해도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고. 모질아, 안녕. 짹짹.” 모질이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과 함께 살며 사냥을 하지 않는 고양이로 살기로 한 모질이는 그렇게 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동물들의 이야기는 미영이네 가족의 이야기와 미영의 아빠는 끝내 “꼭 모두 다 네모반듯하게 맞춰서 변해야할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꼭 모든 고양이는 사냥을 해야 할까?” “고양이와 참새와 닭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까?” 라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