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든 기생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 영화 <기생충>

<기생충>을 처음 보았던 날 감탄했던 지점은 ‘서스펜스’였다. 부잣집저택과 반지하라는 두 공간만을 활용하면서도,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다송이네 가족이 캠핑을 떠난 비 내리는 밤, 기우네 가족이 대저택의 거실을 점령하여 둘러앉은 씬에서는 당장이라도 그 평화를 와장창 깨버릴 누군가가 등장할 것 같은 긴장감에, 웬만한 추격씬에서보다도 손에 땀을 쥐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씬에서의 긴장감이 절정에 달았던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불안감과 공포의 몫이 인물보다도 관객에게 있게 되었던 건, 극중의 인물들은 모르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서와 학력 위조로 기우가, 기우의 동생인 걸 숨기고 기정이가, 비슷한 방식으로 기우 아빠와 엄마가 부잣집의 일원으로 편입되어갈 때마다 관객들은 그들의 행동이 일종의 ‘범죄’임을 알기에 불안해진다. 즉 폭탄 하나가 영화 안에 심어진 것이다. 영화 속 폭탄의 이름은 ‘그들은 들키지 않고 평생 그 집에서 살 수 있을까’다. 관객은 이 폭탄이 언제 터질지 또는 언제 안전하게 제거될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극에 몰입하게 된다.
서스펜스의 완성은 극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행동이다. 영화 속 기우네 가족 모두의 목표를 행동으로 묘사하자면 ‘올라가다’의 동사일 테다.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전체에 다양한 메타포를 심어두었다. 사물과 그 배치, 그리고 색채, 카메라 기법까지 미장센에 탁월한 감독이 아닐까 싶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위와 아래의 공간이었다. 오프닝과 결말은 동일하게 지상에서 반지하의 공간으로 내려오는 카메라 무빙을 택했고, 이는 반지하라는 공간을 부각했다. 또 대문을 열고 다송이네 저택으로 올라가는 계단, 비 오는 캠핑 날 다송이네에서 도망쳐 계속하여 밑으로 또 밑으로 내려오는 기우네 가족의 모습, 잔혹한 생일파티 당일 수석을 꼭 안고 ‘더 밑에 내려가야 해’라고 말하는 기우까지 이 영화 속에서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영화 전체를 아우른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아버지가 숨어있는 그 집을 사겠다는 기우의 다짐과 함께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은, 기우의 다짐이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는 즉 그 집을 어쩌면 평생 살 수 없을 거라는 해석이다. 영화에서 기우네 가족은 계속하여 ‘계획’을 논한다. ‘계획이 뭐야?’라고 묻기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신뢰가 깃든 말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대피소에 누워 기우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알아? 무계획이야.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거든’. 다음날 다송이의 생일파티, 부유한 이웃들은 계획에도 없이 ‘금방’ 모였는데도 ‘쿨하고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하루의 시작부터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의 계획을 세워도 그걸 실행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어디쯤에 속할까.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기생충’이다. 영화를 처음 보았던 날엔 당연히 기생충은, 기우네 가족과 지하실의 부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본 오늘, 기생충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가족이 아닐까 싶었다. 결말의 생일파티, 사람 몇 명이 그 자리에서 칼에 찔리고 죽어가는데 벌레를 보듯 코를 막고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다송의 아빠. 세상의 모든 걸 살 수 있고 많은 사람의 존경도 받는 그는, 본인이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하며 하층의 계급과 끊임없이 구분 지으려 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는다. 모든 걸 소유하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도 한순간에 죽임을 당하고 빈손으로 떠난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떠오른다. 결국 인간은 누구든 기생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기생하여 사는 벌레, 기생충과 인간이 다를 게 뭐가 있을까하는 고민이 든다.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낸 한국 영화 중 한 편이지만, 비판할 지점들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 캐릭터에 치우친 서가 지적받는 지점들 중 몇 가지다. 가령 기우네 가족 중 하필 기정만이 죽는다는 것, 또 앞서 말했듯 다송아빠가 죽는 장면은 상징적인데 이를 비롯해 서사의 중요한 흐름을 주도하는 건 모두 남성들의 몫이라는 것 등이 그러하다. 즉 여느 남성 중심 서사가 그렇듯 여성의 역할이 지나치게 적고, 여성은 죽거나 남성 서사를 보조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이 이러한 시대 흐름은 전혀 읽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