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0) 썸네일형 리스트형 함께보는 여름밤,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 -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 배리어프리 버전 지난 7월 15일, 영화 「남매의 여름밤」 을 보기 위해 충무아트센터 씨네마로 향했다. 「남매의 여름밤」은 방학 동안 할아버지의 오래된 주택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와 동주가 아빠, 고모와 함께 보내는 여름날의 일상을 그려낸 영화다. 흔히 어떤 순간의 분위기가 완벽할 때 ‘이 조명, 온도, 습도’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이날이 딱 그랬다. 상영관을 찾았던 저녁의 따뜻하고 느린 공기와 스크린이 품은 특유의 계절감이 기분 좋게 어우러졌다.이날의 저녁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함께보는 여름밤’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날 극장에서는 2020년 개봉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상영했다. 음성해설 대본은 서수연 작가가 작성하고, 연출은 영화를 만든.. [Review]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다정한 언어 -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다 함께 웃고 우는 일은 대단한 권리라기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에 가깝다. 그러나 시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에게 이 당연한 일상은 매번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는 까다로운 과정이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은 우리나라 첫 음성해설 작가이자 성우로서 드라마, 외화, 연극, 전시에 이르기까지 7,800여 편의 작품을 다뤄온 서수연 저자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본문에 앞서 많은 독자에게 낯설 수 있는 ‘음성해설’의 개념과 용어를 짚으며 시작한다. 음성해설은 시각장애인이 문화콘텐츠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영상과 비영상 매체 속 시각적 요소들을 음성으로 번역해 들려주는 서비스다.언뜻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대중에게는 오랜 관행적 표현인 ‘화.. 픽셀 속 기억이 선율이 될 때 - 게임음악 오케스트라 콘서트 LEVEL UP 유튜브에는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묘한 플레이리스트들이 존재한다. 코닝시티나 엘리니아 같은 옛 의 배경음악을 모아둔 영상들이다. 많은 이들이 이 음악을 배경 삼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다가, 문득 댓글창에 모여 저마다의 유년 시절을 고백하곤 한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제자리걸음을 하던 허접한 내 캐릭터가 생각난다”는 식의 댓글에 수백 개의 공감이 달리는 현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에게 게임 BGM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특정 시절의 공기와 냄새, 그리고 나의 가장 순수했던 몰입의 순간을 가두어 둔 타임캡슐이기 때문이다. 시각적 이미지가 사라진 뒤에도 귓가에 남은 선율만으로 당시의 향수를 고스란히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게임 BGM이 가진 힘일 것이다. 이번 게임음악.. 내 삶의 빈칸을 나만의 언어로 채우기 -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우리는 지금 손가락 하나로 모든 정보와 감정을 조립하는 캡컷의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 숏폼을 점령한 ‘저 됐어요’ 밈은 그 상징적인 풍경이다. “저 됐어요!”하고 버럭했다가 “그래도 어쩌겠어요”하고 속삭이는 AI 보이스의 화법은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청각적 다이내믹함을 선사하며 유저의 손가락을 멈추게 만든다. 하지만 이 밈의 진짜 무서움은 그 만만함에 있다. 누구나 캡컷의 목소리 몇 개를 골라 유니클로 코디 조합이나 관악산 등반 코스 같은 일상을 끼워 넣으면 그럴싸한 콘텐츠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이제 세밀한 고뇌나 독창적인 목소리 대신 이미 검증된 템플릿 안에 자신을 투사하는, 빈칸 채우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부한 시각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 중심에 서 있다 -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 중심에 서 있다. 데일 카네기가 『인간관계론』을 통해 설파한 진리는 명확하다.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에게만 몰입하게 만드는 자기중심성이라는 원심력이 작용하며, 관계의 성패는 이 힘을 거슬러 타인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는 구심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지난 2025년 12월, 1936년 발간된 고전의 권위 있는 해설서인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이 출간되었다. 이번 ‘키네기 마스터 에디션’을 집필한 홍헌영 마스터는 데일 카네기가 설립한 ‘데일카네기트레이닝 Dale Carnegie Training’에서 부여하는 최고 등급의 트레이너다. 전 세계적으로 약 30여 명, 아시아에 3명, 그리고 한국에서는 유일한 ‘카네기 마스터’인 그는 카네기의 원칙을 왜곡 없.. 그림을 읽는 시간, 문장이 머무는 밤 - 그림 읽는 밤 우리는 흔히 미술 작품을 ‘본다’고 말한다. 전시장에 서서 눈으로 껍데기의 색과 형상을 훑고 지나가는 행위, 즉 '볼 견(見)'의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의 신작 『그림 읽는 밤』은 독자에게 ‘본다’는 동사 대신 ‘읽는다’는 동사를 제안한다. 여기서 읽는다는 것은 외형을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그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볼 관(觀)'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일이다.학부 시절 교수님께 들었던 견(見)과 관(觀)의 차이를 떠올려본다. 단순히 시각적 정보를 수용하는 것이 ‘견’이라면, 자신의 관점과 통찰을 투영해 대상의 깊이를 길어 올리는 것이 ‘관’이다.이 책은 저자가 48점의 그림을 통해 ‘견’에서 시작해 ‘관’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화가의 붓질을.. 당신은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요 - 24절기 24절기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계절 구분법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해를 24개의 절기로 나눈다.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생활 기준이 되었고, 그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201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2025년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국립국악원에서는 홍콩무용단의 창작 무용극 「천상의 리듬을 담은 춤-24절기」가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24절기 중 아홉 개의 절기를 골라 그 흐름을 춤으로 표현했으며, 시간의 순환과 생명의 리듬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우리는 흔히 사주를 미래가 궁금해서, 또는 불안한 마음에 해답을 찾기 위한 용도로 떠올린다. 하지만 사주는 본래 24절기 체계를 바탕으로, 오행(목·화·토·금·수)과 음양의 순환과 변화를 통해 사람과 삶을 통찰하는 .. 외로움은 어떻게 마음의 빈틈을 파고드는가 - 외로움의 함정 어느 백화점 앞을 지나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때, 또래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얼굴에 근심이 너무 많아 보이셔서요. 요즘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평소 같았으면 “아닙니다” 하고 예의상 웃으며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나는 ‘근심이 많아 보인다’는 말에 발이 붙들렸던 것 같다. 동시에 경계심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나는 겁 먹은 염소처럼 “네에에...” 대답했고,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어지는 말들은 사이비 권유에서 흔히 들을 법한 말들이었다. “인상이 선해보이세요”, “혹시 집에서 맏이세요?”, “너무 착하시고 열심히 사시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랄까요?” 나는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