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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val Map/창비 어린이청소년 서포터즈 4기

M.B.고프스타인, 『브루키와 작은 양』

잘 만든 책이란, 잘 쓰인 책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잘 쓰인 글이나 그림에도 기준은 여러 가지겠지만, 잘 만든 책은 이야기 외적인 요소까지도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돕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창비에서 출간된 M.B.고프스타인의 그림책들이 그러했다.

창비에서는 M.B.고프스타인의 그림책을 지금까지 총 4권을 출간했다. 『우리 눈사람』, 『이름을 알고 싶어』, 『브루키와 작은 양』, 『할머니의 저녁 식사』. 작년엔 친구에게 『이름을 알고 싶어』를 선물 받아 우연히 작가를 알게 되었고, 올해는 새로 출간된  『브루키와 작은 양』, 『할머니의 저녁 식사』를 읽을 수 있었다. 이 두 권을 읽고나서 책장에 꽂혀 있던 『이름을 알고 싶어』를 빼내어 연달아 세 작품을 읽고 나란히 놓아보기도 하며 생각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책에서 작가와 작품이 그대로 느껴진다.

말하자면 작품과 별개로 책 자체에서 고프스타인이 풍겨 나온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를 주독자로 하는 그림책 장르의 판형은 크고 넓으며 비교적 적은 페이지수에도 두껍다는 특징이 있다. 계간  『창비 어린이』 2020년 가을호 속 천상현의 글 ‘그림책, 공간성의 예술’에 따르면 책을 펼쳤을 때의 시야각인 화각이 주는 몰입감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그림책은 글만큼 그림의 중요도가 높기 때문에 독자의 효과적인 작품 감상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림의 공간 또한 잘 활용해야하며 따라서 넓고 큰 화면으로 그림을 너머 내용에도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고프스타인의 그림책들로 돌아오면, 창비에서 출간된 고프스타인의 그림책들은 한 손에 쉽게 쥐일 만큼 작고 얇고 가볍다. 이는 작품과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책의 형식이 작품의 결 또는 색과도 일치할 때 잘 쓰인 책은 잘 만든 책이 될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고프스타인의 그림책을 ‘단순함이 가진 궁극의 아름다움’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책의 그림은 흰 바탕에 검정색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전부다. 또 불필요한 배경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프스타인 그림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행도 자극도 빠르고 강렬하게 우리의 시공간을 잡아먹는 게 아닐지 고민하는 요즘엔 고유함, 온전함, 고요함 같은 것들이 절실하다. 풍요로움은 역으로 내면의 소란함 혼란함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고프스타인의 그림책은 담백하게 단 한 사람의 고유한 목소리에 이끌려 갈 수 있었다. 

이야기 자체도 그림과 글과 책의 형식과 결을 함께한다.  『브루키와 작은 양』에는 브루키와 브루키의 작은 양이 등장한다. 브루키와 작은 양의 하루는 따뜻하고 안락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언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언어가 있는 것 같다. 동물과 식물의 언어 사람의 언어. 그중에서도 동물과 식물의 언어는 사람의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저 온전히 한 쪽 입장에서 의미를 ‘추측’할 뿐이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중심적 사고로 다른 언어를 소화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이미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의 어려움은 사람 간에도 나타난다. 서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느꼈던 건 ‘사랑’과 ‘미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인데, 브루키와 작은 양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처음엔 브루키 또한 작은 양에게 자신의 언어로 된 책 읽기를 요구했듯 사랑은 거의 모든 경우 욕심을 동시에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숨어, 동일한 존재로 아름다워지려는 욕심이 된다. 이제는 그것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음이라는 걸 알 것 같다.

하지만 ‘작은 양을 위한 노래’가 있듯 끝내 어느 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그대로 남겨두고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나는 읽지 못하지만 당신은 재밌게 읽을 그런 책을 선물하고, 그 책을 읽을 당신의 보금자리를 보살피는 다정함.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마음을 지배해 힘든 날에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브루키는 작은 양과 함께 살아.
브루키는 작은 양을 아주 사랑했지.

- 본문 중에서

 

* 본 리뷰는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